인간은 이성과 호기심의 힘을 제어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있기 위해서 유일하게 의지하며 기댈 곳이기 때문이다.

 

이 힘은 인간들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를 계속 갈망하게 만든다. 

그것이 그 힘들의 속성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계속 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가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절대 멈출 수 없다. 

멈추고 싶다해도 멈출 수 없다.

 

이성과 호기심은 결정체인 과학은 계속 발견하고 있다. 

블랙홀, 양자 상태

블랙홀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자 상태에서는 동일한 순간에 동전의 양면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듯한 현상이다.  

 

이제는 과학인지 철학인지 종교인지, 신화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한 인간의 호기심은 자연과 인간에게서 수집한 지식을 사용해 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인공 지능, 생명 과학

이제 인간은 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들어가다 불타 죽는 이카로스의 운명일지라도.

지구가 버텨주는 한 계속 그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도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모습을 드러내든지

아니면, 물로 씻어 버리고 새로운 상황으로 리셋하든지.

 

돈을 내고 워렌 버핏 같은 사람하고 한 끼 식사를 하는 이벤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금액이 만만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식사 한끼 기회 얻기가 힘들다고 한다. 


왜 일까? 

인생을 살아가는 그만의 비법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돈을 버는 그만의 비법이 있어서일까? 

물론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좋은 정보도 얻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본다. 


그가 하는 말은 새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그가 하는 말은 

그가 하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영감"이라고 한다.

워렌 버핏같은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즉 그에게서는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이처럼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돈을 주고도 얻기 힘든 것이다.

깨달음이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얻고 나면 쉬워보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경우는 

마치 서로 다른 쪽을 평생 보지 못하는 동전의 양면같기도 하다. 


그러나 설령 깨닫게 만드는 방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더라도 

배우고 가르치는 목표는 명확하고 동일해야 한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목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깨달음과 영감이어야 한다. 

"아하~!", 이것이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목표여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AI와 차별화된 인간의 교육이다.  



AI가 만든 음악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주크데크

AI가 만든 곡으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이 사이트의 인공 지능은 사용자가 몇 개의 선택만 하면 곡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은 저작권까지 개인에게 판매될 수도 있다.


나도 한번 사이트에 가입해서 클릭 몇 번으로 음악을 한번 만들어본다.

Elector Folk 


주크데크로 곡을 구매하려면

√원하는 음악 장르 선택(피아노, 록, 팝, 영화음악 등)

√음악의 분위기(무드) 선택

√원하는 길이를 입력(최대 5분)

√곡의 중심 악기를 선택

√클라이맥스가 어디쯤에서 연주될지 선택

√곡의 빠르기를 입력

√음악을 듣고 나서 곡을 구매할지 결정(구매하지 않더라도 다운로드 가능)

※ 저작권까지 보유하려면 199달러


AI는 조금씩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고,

우리는 AI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게 또 다른 커다란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2018/01/29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1

2018/01/30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2

2018/01/31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3

2018/02/04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4

2018/02/05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5



인공 지능이 나타나기 전에도, 일, 돈, 권력, 사랑 그리고 인간과 , 인생, 삶의 관계가 정확히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우리의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 돈 그리고 권력과 사랑에 몰두하면서 살아왔다. 그것들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능"이라고 믿었었다. 권력욕, 일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에 대한 바램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지금까지는 이런 가치들에 대한 당위성을 이론 차원에서 추상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본능"이라고 말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힘들어져 버렸다. 이런것들이 왜 가치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설명과 대답은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그것은 이론으로 끝나도 괜찮은 시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이론이나 가정 차원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인간의 생존과 실존과 관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답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공 지능"이라는 다른 종에 의해서 인간이 대체 가능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공 지능이 나온 후에도 계속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인류가 발견한 가치 중에서 "사랑"만큼 유용한 가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가치들을 평가하는 일을 이제는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일, 돈, 권력을 대체할 것이 무엇일까? 

현재의 이런 가치들을 대체하고도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가치가 등장해야 인간의 삶이 가치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될까? 

이런 가치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도 인간은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가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가치들을 찾는 "인간 자체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실존적인 답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다시 또 "인생의 가치"를 물어야 할 수 있다. 이런 가치들과 행복 그리고 인간의 본능과 인간의 가치, 인생의 문제는 이제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질문이다. 


인류의 성현들은 인간과 인생의 생존과 그 가치에 대해서 철학해 왔다. 그들의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구했고 그 가치를 믿으면서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왔다. 이제는 새로운 생존 철학 세계가 구축되어야 하는 때이다. 


영상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금 당장은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과도기이다. 새로운 요구사항에 따라서 어디에선가 산책길을 거닐면서 치열하게 사색하고 있는 선각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와 정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항상 주시할 수 밖에 없다. 인류의 생존과 그리고 각자의 의미와 행복을 위해서 철학과 정치 참여 등에 대한 관심은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나 때"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이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아픈 마음도 내가 가고 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그냥 모른 체 하고 있어야 하나? 


인간이 있든 없든 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을 수 있을까? 신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인간이 아니어도 사고할 수 있는 다른 종()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까? 


신은 그 자체만으로 절대적인 존재라고 하자. 그러나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출물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 종교는 인간이 존재해야 의미 있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으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가? 완전히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사랑을 할 수 있는 감정을 갖는 존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만 계속 우기고 있을 것인가? 그 "개인의 생"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다. 인간에게 호기심과 궁금함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본능이 있는 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종교적 윤리와 도덕의 이름으로만 "안 된다"고 막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교리와 윤리 도덕으로 막는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가치 관점에서 봤을때 이제 인간이 무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종의 출현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굳이 머피의 법칙이라는 이론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종교도 알고 있고 우리 개인들도 알고 있다.  그것이 인간과 세상사라는 것은 경험으로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는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교리와 윤리, 도덕에만 의존한 채 "안 된다"고만 고집하는 것은, "말은 해 보겠으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태도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아니면 "내 생 동안에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를까? 


새로운 종 또는 인간의 변형이 우리의 사회 구석 구석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왔을때도 계속 윤리와 도덕의 이름으로만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것인가? 실제로 그때가 되면 인간과 세상을 포기하고 종교로서의 역할을 그만 둘 것인가? 어떤 식의 선택을 하든 간에 인간의 가치와 인생의 가치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는 윤리와 도덕의 관점이 아닌 실존과 생존의 관점에서 종교도 함께 철학하고 고민해 줬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2018/01/29 - [달봉이방] -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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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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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김대식, 팀 던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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