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4 11:30

가을을 타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가을은 힘든 것 같다. 올해는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다른 곳에 집중할 거리가 있었으니까. 공부를 시작했고, 내친김에 자격증도 따려고 했었다. 다 하고 나면 가을이 지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을에 공부를 하면 "가을 앓이"를 피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잘못된 예상이었다. 가을을 그대로 받아들이나 공부를 하나 결론적으로는 같은 "힘듦"이었다 


▣ 가을에 하는 사고와 다른 계절에 하는 사고는 다르다.


가을이 아닌 날에 하는 평상시의 사고 패턴이다. 

"간단하다"- 갈곳을 잃지 않고 정확히 가고자 하는 길을 유지한다.

"시작과 끝이 있다" -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고, 결론이 있다. 설령 결론이 보류더라도.

"길이가 있다"- 생각에 투자된 시간의 길이가 결정될 수 있다. 

(이런 예술적 감각이란....)



가을에 하는 사고 패턴이다.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봤던 것 같은 "브라운 운동"이 저러지 않았던가 한다. 창문을 보고 있자면 온갖 생각들이 난무한다. 왜 생기는지도 모르겠고, 결론도 없다. 패턴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센서 문제도 있다.


청각, 후각같은 물리적인 센서는 그대로일 것이다. 근데 이 센서에서 감지되는 자극의 양이 다른 계절보다 확대된다. 

또한 외부 자극의 "의미"를 해석하는 해석기에 문제가 생긴다. 


상대방은 평소대로 얘기할 가능성이 많다. 근데 "가을을 타는 사람"이 받아들일때는 감성의 위력이 이성보다 강하게 되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되어 있던 문제들이 "비약"된다. 돌이켜 보면 이런 문제들의 대부분은 인간 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물론 봉인 해제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도 많다. "감성의 비약"때문에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서 "저의(底意)"를 찾게 된다. 아무 의미없는 상대방의 행동, 말에서도 찾게 된다. 가을에 인간 관계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증가하는 이유이다. 

▣ 이런 상황에서 일관되게 처음의 사고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공부를 이런 시기에 한다? 당연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저런 혼란스런 머리로 공부를 해 나간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칫 정신줄을 놓으면, "내가 왜 여기 있지"하는 곳으로 흘러들어가기 일쑤다.

처음 보안 공부를 시작할때는 빨리 자격증을 획득하고, 나름 보안 관련해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을 정리도 하고, 원서 번역도 할 생각이었다. 근데 자격증 획득에서 제동이 걸렸다. 공부 방향도 잘못되었지만 가을의 이런 특성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방식을 재미없는 암기식으로 전환을 했다. 두번째 시험에서 겨우 자격증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자격증을 획득하고 나서의 이런 기분, 정말 싫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듯한 이런 기분. 원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체계였는데, 수많은 지식 쪼가리들만 남아 있는 듯한 이 기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바람과 함께 흩어져 버리는 쪼가리들. 이런 지식 쪼가들을 줍고 있자면, 마치 내가 "넝마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1단계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는 재미있는 공부를 좀 해야 겠다. 

그래도 힘들었으니 내 자신에게 스타벅스 커피 한잔으로 위로해본다. 온 몸이 쑤신다. 6 시간 동안 후덥지근한 히터 공기속에서 시험을 보고 있자니 머리, 허리가 견디지 못한다. 젊은 친구들은 싱싱하던데.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나 해야 겠다.

▣  2016년 가을

2015년, 작년 가을에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2017/01/26 - [분류 전체보기] - 또 가을이다...(2015)


올해도 가을을 보내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금으로서는 가을을 슬기롭게 견뎌낼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이것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2016년 올해의 생각이다.

언제가 나의 아들이 혹시라도 힘든 가을을 보낼때, 이 글을 읽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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